좋은 그림책은 어떻게 고를까?
좋은 그림책 고르는 7가지
“그림책은 내용이 짧고 그림이 많으니 다 비슷하지 않나요?”
서점의 그림책 코너에 가면 수백 권의 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표지는 하나같이 아름답고 제목도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정작 한 권을 고르려고 하면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부모님들은 자주 묻습니다.
“우리 아이에게는 어떤 그림책이 좋을까요?”
어른들도 궁금해합니다.
“어른이 읽어도 좋은 그림책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좋은 그림책은 반드시 유명하거나 많이 팔린 책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읽는 사람의 나이와 마음, 현재의 상황에 따라 좋은 책의 기준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심리상담과 그림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발견한 사실도 이와 비슷합니다. 같은 그림책을 읽어도 누군가는 깊은 위로를 받지만, 다른 사람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수롭지 않게 펼친 한 장면이 오래 묻어 두었던 기억과 감정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따라서 좋은 그림책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얼마나 유명한 책인가’가 아니라 ‘지금의 나와 얼마나 잘 만나는 책인가’입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그림책 가운데 나와 아이에게 맞는 책은 어떻게 고를 수 있을까요?

1. 지금의 마음과 만나는 그림책을 선택하세요
사람은 저마다 다른 마음의 계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위로가 필요하고, 어떤 날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 어떤 때에는 답을 찾기보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그림책을 고르기 전에 먼저 자신이나 아이의 현재 상태를 살펴보세요.
지치고 힘들다면 편안한 위로와 쉼을 전하는 이야기
불안하거나 두렵다면 작은 용기와 안전감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
외롭다면 우정과 관계, 소속감을 다루는 이야기
이별을 경험했다면 상실과 그리움을 천천히 표현하는 이야기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면 도전과 성장을 보여주는 이야기
화가 자주 난다면 감정을 안전하게 이해하고 표현하는 이야기
다만 힘든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감정과 똑같은 주제의 책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문제를 직접 다루는 책보다 전혀 다른 상상의 이야기가 더 큰 휴식과 위로를 줄 수 있습니다.
좋은 그림책은 독자의 마음을 억지로 변화시키기보다 현재의 마음 곁에 조용히 머물러 줍니다.
2. 그림을 오래 바라보고 싶은 책을 골라보세요
그림책에서 그림은 글을 꾸며 주는 장식이 아닙니다. 그림도 글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중요한 언어입니다.
좋은 그림책을 만나면 글을 다 읽고도 책장을 바로 넘기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인물의 표정이나 배경의 색, 장면 속 작은 물건 하나가 마음에 걸려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림을 보며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왜 이 장면에는 이런 색을 사용했을까?”
“주인공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글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림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앞 장면과 비교하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글과 그림이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책보다 서로 다른 정보를 전하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책이 있습니다. 글에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림 속 표정은 슬퍼 보일 수도 있고, 글에 등장하지 않는 작은 인물이 그림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책은 관찰력과 상상력을 키워 줄 뿐 아니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천천히 발견하도록 도와줍니다.
3. 정답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책을 선택하세요
좋은 그림책은 독자에게 하나의 답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해.”
“착한 아이는 이렇게 행동해야 해.”
이처럼 교훈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여백을 남겨 둡니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이 실수했을 때 곧바로 잘못을 설명하고 교훈을 알려주는 대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독자는 그 장면을 보면서 주인공의 마음을 상상하고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갑니다.
이러한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때 더욱 빛납니다. 아이는 인물의 모험에 관심을 보이고, 어른은 그 안에서 관계나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나누게 됩니다.
좋은 그림책은 생각을 대신해 주는 책이 아니라 생각이 시작되도록 돕는 책입니다.
4. 책을 덮은 뒤 질문이 생기는지 살펴보세요
좋은 그림책을 읽고 나면 이야기가 완전히 끝났다는 느낌보다 마음속에서 새로운 질문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인공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다른 인물은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마지막 장면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 이야기는 내 삶과 어떤 점이 닮았을까?
질문이 생기는 책은 독자를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독자가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연결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림책을 함께 읽을 때는 아이에게 줄거리를 확인하는 질문만 하기보다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질문을 건네는 것이 좋습니다.
“주인공이 왜 그랬어?”라고 다그치듯 묻기보다 “이 장면을 보니 어떤 마음이 들어?”라고 물어보세요. 정답을 맞혀야 한다는 부담이 줄어들면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더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5. 아이와 어른이 함께 감동할 수 있는 책을 골라보세요
좋은 그림책은 연령의 경계를 쉽게 넘어섭니다.
아이에게는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로 읽히고, 청소년에게는 성장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다가오며, 어른에게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로 읽힐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주인공의 행동만 보이던 책이 어른이 된 뒤에는 부모의 마음이나 주변 인물의 외로움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삶의 경험이 달라지면 같은 장면도 새롭게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책을 고를 때도 ‘교육에 도움이 되는가’만 살피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모 자신도 재미와 감동을 느끼는 책을 골라보세요. 읽어주는 사람이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면 목소리와 표정, 책장을 넘기는 속도에도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머물 수 있는 이야기는 책을 읽는 시간을 교육의 시간이 아니라 관계를 나누는 시간으로 만들어 줍니다.
6. 한 번 읽고 끝나지 않는 책을 선택하세요
책을 덮은 뒤 며칠이 지나도 문득 떠오르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한 장면이 계속 생각나거나 짧은 문장이 마음속에 오래 머뭅니다.
그런 책은 삶의 어느 순간 다시 펼쳐 보게 됩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주인공의 외로움이 보였지만, 다시 읽을 때는 그 곁을 지키는 인물의 따뜻함이 보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슬프게 느껴졌던 결말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새로운 시작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계절과 나이, 생활환경이 달라지면 독자의 마음도 달라집니다. 책은 그대로지만 책을 바라보는 내가 변했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 읽고 모든 의미가 드러나는 책보다 읽을 때마다 다른 장면이 마음에 들어오는 책이라면 오래 곁에 둘 가치가 있습니다.
7.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게 만드는 책을 골라보세요
그림책을 활용한 심리상담이나 그림책 테라피에서 중요하게 살펴보는 것은 책이 얼마나 감동적인가만이 아닙니다. 그 책이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안전하게 꺼낼 수 있도록 돕는가도 중요합니다.
그림책을 읽은 사람들은 때때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장면을 보니 어린 시절의 제가 생각나요.”
“저도 주인공처럼 혼자라고 느낀 적이 있어요.”
“이 그림을 보니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람이 떠올라요.”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만 챙기며 살았던 것 같아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바로 이야기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책 속 인물이나 장면에 기대면 조금 더 편안하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외로워요”라고 직접 말하는 대신 “이 아이가 무척 외로워 보여요”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림책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책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연령과 발달에 맞는지도 살펴보세요
좋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의 연령과 발달 수준, 관심사에 맞지 않으면 충분히 즐기기 어렵습니다. 특히 아이의 그림책을 고를 때는 권장 연령만 따르기보다 실제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린아이에게는 반복되는 문장과 리듬, 분명한 그림,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가 편안함을 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성장한 아이는 인물의 갈등이나 열린 결말, 다양한 관점이 담긴 이야기에 관심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모두 같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글이 거의 없는 그림책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긴 이야기에 집중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동물 이야기만 반복해서 찾거나 특정 색과 그림체를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같은 책을 계속 읽어 달라고 한다면 새로운 책을 읽히기 위해 서둘러 치우지 않아도 됩니다. 반복해서 읽는 과정에서 아이는 이야기의 순서를 익히고, 익숙함에서 안정감을 얻으며,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장면을 새롭게 찾아냅니다.
좋은 그림책을 고르는 간단한 방법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만났다면 다음 순서로 살펴보세요.
표지와 제목을 천천히 바라봅니다.
면지와 속표지에도 이야기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글을 읽기 전에 그림만 먼저 넘겨봅니다.
가장 시선이 오래 머무는 장면을 찾아봅니다.
글과 그림이 서로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지 확인합니다.
책을 덮은 뒤 어떤 감정이나 질문이 남는지 느껴봅니다.
지금의 나 또는 아이와 어떤 점에서 연결되는지 생각해 봅니다.
모든 기준을 만족해야 좋은 그림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 한 장면만으로도 마음을 움직였다면 그 책은 지금의 독자에게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일 수 있습니다.
그림책을 경험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 질문
그림책을 읽은 뒤 곧바로 내용을 설명하거나 교훈을 정리하기보다 잠시 여운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다음 질문 중 하나를 천천히 꺼내 보세요.
가장 오래 바라본 장면은 어디였나요?
가장 마음에 남은 문장은 무엇인가요?
지금 내 마음과 가장 닮은 인물은 누구인가요?
그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어디에 머물고 싶나요?
오늘의 나에게 이 책이 건네는 한마디는 무엇인가요?
아이와 읽을 때는 모든 질문을 한꺼번에 묻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그림만 보고 싶어 하거나 대답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 마음도 존중해 주세요. 그림책 감상에는 반드시 말로 표현해야 하는 정답이 없습니다. 조용히 바라보고 웃거나, 한 장면에서 오래 머무는 것 역시 충분한 독서 경험입니다.
그림책을 선택할 때 주의할 점
감정과 관련된 그림책을 고를 때는 책의 메시지만큼 독자의 현재 상태를 살펴야 합니다. 상실이나 이별, 가족 갈등, 따돌림처럼 민감한 주제를 다룬 책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힘든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책을 읽다가 불편함이 커진다면 끝까지 읽도록 강요하지 않아도 됩니다. 잠시 덮어 두거나 다른 책을 선택해도 괜찮습니다.
또한 그림책을 읽고 보이는 반응만으로 아이나 어른의 심리 상태를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특정 그림을 골랐거나 한 인물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성격이나 마음의 문제를 해석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림책은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소중한 매개체이지만, 심리검사나 전문적인 상담을 대신하는 진단 도구는 아닙니다.
가장 좋은 그림책은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책입니다
좋은 그림책은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좋은 책이 아닙니다. 상을 받았거나 많은 사람이 추천했다고 해서 모든 독자에게 똑같은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의 내 마음을 이해하게 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도록 돕는 책이라면 그것이 바로 좋은 그림책입니다.
아이에게는 상상할 수 있는 세계를 선물하고, 어른에게는 오래 잊고 있었던 감정과 기억을 되찾아 주는 것. 짧은 글과 몇 장의 그림으로 삶에 관한 긴 이야기를 시작하게 하는 것. 그것이 그림책이 가진 특별한 힘입니다.
다음에 서점이나 도서관의 그림책 코너를 지나게 된다면 제목만 보고 지나치지 말고 마음이 가는 한 권을 천천히 펼쳐 보세요.
어쩌면 그 책은 오래전부터 지금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